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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구본사를 가다- 불교신문
글쓴이 용주사 등록일 201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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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 세계화’선도하는 제2교구본사 용주사

   < 정조의 효심이 서려있는 융릉 모습 >

   정조대왕의 애틋한 思父曲 서린 ‘효찰대본산’

 

사도세자 그리는 아들의 지극한 마음으로 사찰 창건 / 호성전.부모은중경탑 등 사찰 곳곳 ‘孝 문화재’가득 / 개발 바람에 효행지 위기…세계문화유산 등재로 모면

사찰마다 그곳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별칭이 있다. 제14교구본사 범어사는 ‘선찰대본산’이라 불리고, 25교구본사 봉선사는 ‘교종본찰’이다. 이렇듯 각 교구본사와 사찰들은 창건 역사에 따라 그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대부분 사찰들이 불교 사상과 교리에 근거한 ‘닉네임’을 갖고 있지만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제2교구본사 용주사는 특별해 보인다. 용주사의 또 다른 이름은 ‘효찰대본산’이다.

물론 ‘효(孝)’는 불교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부모은중경>이 그렇고 부처님도 효행의 중요성을 누누이 밝혔다. 용주사에 효찰대본산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사찰의 창건 역사와 관계가 깊다.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정조대왕이 세운 원찰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원찰이라는 이유로 ‘효’ 중심 도량이 된 것은 아니다. 정조가 그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에 대한 지극한 효심이 발휘된 곳이 바로 용주사인 까닭이다.

용주사 근처에는 조선시대 왕릉인 융.건릉이 있다. 융릉은 아들인 정조에 의해 장조로 추존된 사도세자와 그의 비(헌경왕후)가 잠들어 있으며, 바로 옆에 자리한 건릉은 정조와 효의왕후가 묻혀 있는 곳이다. 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마친 사도세자에 대한 애절한 사부곡(思父曲)을 읊조렸던 정조가 이승에서 못 다한 효도를 저승에서나마 받도록 하기 위해 조성했던 사찰이 용주사다. 부친의 넋을 위로하고 능을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용주사는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심이 절절하게 배어 있는 곳이다.

정조는 융릉.용주사와 함께 저수지인 만년제도 건립했다. 사도세자가 사후에라도 제왕의 지위를 누리기 바라는 아들의 지극한 마음 때문이었다. 풍수지리가 성행하던 조선시대에 왕을 의미하는 용(융릉)이 땅에 누워 여의주(만년제)를 갖고 놀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뜻으로, 이를 반룡농주혈(盤龍弄珠穴)이라 명명했다. 여기에 능을 수호하는 용주사까지 갖춰지면서 정조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은 이 일대를 효행지로 만들게 했다.

정조의 ‘사부곡’은 이같은 대작불사를 마친 후에도 계속됐다. 기록에 따르면 정조는 재위동안 모두 13차례나 아버지가 묻힌 능을 참배하는 ‘능행차’를 단행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죽은 뒤에도 아버지를 모시며 ‘시묘’하면서 살겠다는 정조의 염원도, 융릉 바로 옆에 건릉이 조성되면서 실현했다. 이렇듯 이 지역은 정조대왕의 효행이 살아 숨쉬는 곳이며, 용주사는 그 뜻을 이어 ‘효찰대본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때문에 용주사에는 효과 관련된 시설이 즐비하다. 우선 일주문과 삼문 사이에는 홍살문이 있다. 다른 사찰에는 거의 볼 수 없는 것으로, 정조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한 용주사에 사도세자의 위패를 봉안했기 때문이다. 이 위패가 봉안된 곳이 대웅보전 우측에 자리한 호성전이다. 호성전 앞에는 부모은중경탑이 위치하고 있다.

이밖에도 용주사는 효행박물관과 효행교육원을 조성해, 현재에 있어서도 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효행박물관에는 정조가 용주사를 건립하면서 하사한 상량문과 <불설부모은중경> 목판 42매, 사곡병풍, 금동향로 등 유물이 있어 당시 절절했던 효심을 느낄 수 있다.

현재 용주사와 융.건릉 주변은 스산하다. 곳곳에 철로 만든 방책이 세워져 있다. 2004년부터 본격 추진되고 있는 화성 태안3지구 개발사업의 흔적이다. 120만㎡(약 3만6000평) 대지에 아파트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진행되면서 정조대왕의 효행지는 콘크리트 숲에 파묻힐 위기에 놓였다. 반룡농주혈이 파괴될 뿐 아니라, 택지개발사업 전 유물조사에서 사도세자가 건릉으로 옮겨가기 전 처음 안치했던 초장지(初葬地)가 원형 그대로 발견되면서 논란을 빚게 됐다.

이에 용주사를 비롯한 지역 시민단체들은 연대해 2006년부터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그 대안으로 사적지 지정 및 ‘효 역사 테마공원’ 조성을 정부에 청원했다. 이같은 노력은 빛을 발해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후보시절 용주사를 방문해 효 테마공원 조성을 공약으로 채택하고 인수위에서도 새정부 국정과제로 삼았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용주사와 경기문화연대 등 46개 단체들은 ‘정조대왕 효행유적지 보존 범국민연합’을 구성, 지난해 청와대에 상소문을 전달하고 100일간 서명운동을 벌이며, 거리행진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발사업에 반대했다. 이즈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지난 2009년 6월 조선왕릉 전체 40기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현재 개발사업은 전면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사업이 취소되지 않아서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용주사 주지 정호스님은 “융.건릉과 용주사 등 이 지역 일대는 ‘효’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직접 실천된,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현장”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효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 이런 소중한 유적지에 아파트 개발보다는 효행을 선양할 수 있는 시설이 들어서는 것이 더 큰 경제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용주사=김하영 기자 hykim@ibulgyo.com

▲ 교구본사 최초로 세워진 승려노후복지시설 ‘서림당’.

< 어린이 포교를 위해 개최한 ‘2교구 어린이 찬불율동제>

 

 < 3월 공식 개원하는 효행문화원.>

효 관련 다양한 사업.프로그램 /교구본사 최초 ‘승려노후복지시설’ 건립/이주노동자.다문화가정에 효실천 행사도

용주사에는 ‘효’와 관련한 다양한 사업과 프로그램이 무궁무진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승려노후복지사업이다.

지난 2005년 건립한 ‘서림당(西林堂)’은 승려노후복지시설로서, 교구본사 최초를 자랑한다. 전통사찰양식으로 꾸며진 서림당은 6평짜리 독방 9칸으로 구성된 1인1실 구조로서, 각 방마다 욕실과 화장실이 구비돼 있어 수행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배려했다.

선원에서 20년 이상 정진한 문중스님들을 입주 대상자로 한정하고 있다. 더불어 선원 정진 연한에 따라 수행비를 지급하고 있는 특징도 있다. 20년 이상은 매달 30만원씩, 25~30년은 40만원, 30년 이상은 50만원으로 책정돼 있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일정정도 입원비용도 본사 차원에서 해결하는 시스템도 갖췄다. 이외에 선방 수좌가 아니더라도 연세 65세 이상으로 30년 이상 교역직에 종사한 스님들 가운데 현재 정식 보시금을 받지 않는 스님들에게도 매달 경로복지금 40만원이 전달된다. 지난해 처음 실시해 3명의 스님이 혜택을 받았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위한 사업에서도 ‘효’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용주사는 지난해 학생 4명에게 고향 방문을 기회를 줬다.

고향을 찾아 부모님을 만나 기쁘게 하는 것도 ‘효’라는 발상에서 비롯된 배려다. 특히 한글학교는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을 용주사가 수행하며 지역에 불교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어린이 포교에 매진하고 있는 것도 용주사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 지난해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처음으로 개최한 ‘2교구 어린이 찬불율동제’는 한국불교의 미래인 어린이 불자들이 노래와 춤으로 부처님을 찬탄하는 마당이었다. 경기지역 8개 단체가 참가한 행사는 지역 어린이 법회 활성화와 함께, 아이들이 부처님오신날을 축제로 즐기며 부처님 오신 참 뜻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불교신문 2600호/ 2월24일자]

                              교구본사 주지에게 듣는다

 

 효를 통해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추구하는 사찰 건립에 앞장서는 용주사 주지 정호스님.

‘효 문화’ 선양에 앞장선  주지 정호스님/“한국의 孝문화, 세계에 알릴 터”/효행,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서 유일한 문화유산

 

정신문화 수출한 보고에 아파트 단지라니 안될말 /사도세자 제향의식 복원/ 호성전.홍살문 다시 세워

‘효행문화원’ 내달 개원/외국인에 효 문화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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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는 행위이므로 구체적인 모습이 없는데, 이것이 실제 눈에 보인다는 것은 세계문화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집니다. 한국의 효 문화는 세계가 배워야 할 정신가치입니다.

   “수행자들아, 전법하러 떠나가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에 대한 자비심으로, 신(神)들과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둘이서 한 길로 가지 말라. 수행자들아, 처음도 유익하고 중간도 유익하고 끝도 유익하며, 내용도 유익하고 형식도 유익한 담마(法)를 가르쳐라. 오로지 깨끗하고 순수한 삶을 드러내라….” 부처님의 유명한 전도선언이다.

용주사가 올곧이 ‘효찰대본산’이라는 정체성을 갖도록 이끄는 스님이 바로 주지 정호스님이다. 정호스님은 사찰의 ‘이익’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태안3지구 개발사업을 온몸으로 반대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다. 용주사 주변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많은 이들이 용주사를 찾을 것으로 예상돼 포교와 함께 사찰 재정에 큰 보탬이 되겠지만, 스님에게는 당장의 이득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용주사와 융.건릉, 만년제는 정조대왕의 효행을 증명하는 세계 유일의 유적입니다. 효는 행위이므로 구체적인 모습이 없는데, 이것이 실제 눈에 보인다는 것은 세계문화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집니다. 한국의 효 문화는 세계가 배워야 할 정신가치입니다. 잘 가꿔서 활용해야 합니다. 후세의 교육장으로서 값어치가 크며, 효문화 브랜드를 만들어 외국에 우리의 정신문화를 수출할 수 있는 중심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니요.”

세계적인 역사학자 아놀드 조셉 토인비(1889~1975)는 “한국의 효 문화는 21세기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가장 훌륭한 가치이며 세계는 한국의 효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정호스님은 세계에 자랑할만한 우리의 전통정신문화인 ‘효’를 선양하는 것이 우리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이익이 되고 행복하게 만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이같은 서원은 스님으로 하여금 지난해 범국민운동에 적극 동참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스님은 이러한 대의명분에 따라 적극적인 외부활동을 펼침과 동시에 사도세자를 추모하고 능을 지키며 고인의 명복을 비는 원찰이자 능침사(陵寢寺)로서, 효찰대본산이라는 위상에 걸맞는 사격으로 일신하는 불사도 진행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불사가 사도세자 제향의식을 100년 만에 복원한 것이다. 용주사에서는 장조(사도세자)와 헌경황후(혜경궁 홍씨), 정조와 효의왕후의 위패를 모시고 1년에 여섯 차례 재를 지냈지만 1907년을 끝으로 일제강점기 이후 중단돼 왔다. 그러던 것을 지난 2008년 복원하고 사도세자의 246주기 제향의식을 봉행한 것이다. 이와 함께 사도세자의 재를 올리는 공간인 호성전을 복원하고 현판을 제막했다. 호성전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폭격을 맞아 전소돼 빈터로 남겨져 있다가 1980년대 전각만 중창한 바 있다. 또 사찰 창건 당시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고 경의를 표하기 위해 건립했던 홍살문도 다시 세웠다. 정호스님은 “효찰대본산 용주사 창건 당시의 모습을 회복해 우리나라 효 문화를 선양하는 한편, 정조대왕이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못 다한 혼정신성의 효를 사후에라도 실천하고자했던 뜻을 계승하고자 제향의식을 복원하게 됐다”고 밝혔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우수한 정신문화를 현재에 더욱 발전시키고 후세에 전파하기 위한 노력도 경주하고 있다. 효행교육원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효를 실천하는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에는 순국선열 호국영령 위령재가 열리고, 가을에는 시민과 함께 하는 산사축제인 승무제를 개최한다. 승무제가 특별한 이유는 백수연이 거행되기 때문이다. 100세에서 한 살이 모자란 99세를 의미하는 백수(白壽)에 이른 지역 어르신을 초청해 경로잔치를 열며 효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효행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효행박물관이 지난해 마련한 ‘효 꿈나무교실’은 아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예절교육과 함께 역사와 우리문화 속에 깃든 효를 가르쳤다. 정호스님은 효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드는데도 관심이 많다. 3월 개원할 예정인 효행문화원이 첫 단추를 장식하게 된다. 템플스테이 전용관인 효행문화원은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한국불교의 모습을 선보일 뿐 아니라 효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올해 문을 여는 효행교육원 생활관은 좁은 방사문제 해결과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효행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호스님은 “조선 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이 지역이 세계유산에 걸맞는 전통문화를 세우고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며 “용주사도 효 문화를 계승하고 선양하기 위한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용주사=김하영 기자 hykim@ibulgyo.com

 

효 근본도량이며 납자들의 정진처인 용주사. 사진은 용주사 대웅보전과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대웅보전 후불탱화(위쪽).

 

쪾제2교구본사 용주사는…

 

1790년 정조에 의해 세워진 능사

김홍도의 대웅전 후불탱화 이채

용주사에는 본래 854년(신라 문성왕 16년)에 세운 갈양사(葛陽寺)가 있었다. 952년(고려 광종 3년)에 병란으로 소실된 것을 조선 제22대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을 화산으로 옮긴 후, 1790년 갈양사 자리에 능사(陵寺)로서 용주사를 세우고 부친의 명복을 빌면서 유래됐다. 이에 따라 용주사 전각 구조와 배치는 왕궁의 그것을 따르고 있는 특징을 갖게 됐다.

용주사 낙성식 전날 밤 정조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고 ‘용주사’라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이로써 용주사는 효심의 본찰로서 불심과 효심이 한데 어우러지게 됐다. 사찰 창건과 동시에 전국 5규정소(糾正所, 승려의 생활을 감독하는 곳) 중 하나가 되어 승풍을 규정했으며, 팔로도승원(八路都僧院)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통제했다.

중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120호 용주사 범종과 시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용주사 상량문, 5층 석탑, 금동향로, 사곡병풍 등 갖가지 성보문화재가 즐비하다. 특히 시도유형문화재 제16호 용주사 대웅전 후불탱화는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채롭다.

용주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중앙선원이다. 1969년 전강스님이 세운 중앙선원은 한국불교 수행가풍을 바로 세우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 스님들의 평가다. 용주사가 효행의 근본도량인 동시에 수행중심 사찰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앙선원은 전강스님(1898~1975)을 조실로 추대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조실로 모시고 있다. 전강스님은 경허스님에서 만공스님으로 내려오는 한국불교의 선맥을 잇는 대선지식으로, 현대 한국의 대표적 고승이자 용주사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하다. 전강스님의 선맥은 인천 용화선원 선원장 송담스님에게 전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올해 동안거에 중앙선원에는 14명의 납자들이 정진하고 있으며, 인천 용화선원과 인제 용화선원에서도 각각 50여 명의 스님들이 정진하며 용주사의 수행전통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용주사의 대중공사는 자랑거리 중 하나다. 전강스님의 수행을 본받고 있는 문중스님들은 대중 공의를 통해 교구 살림을 이끌고 있다. 교구본사 최초로 승려노후복지시설을 건립하고 지금까지도 여법하게 운영되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문도스님들이 모은 복지기금이 2억4000여만 원이나 돼 다른 교구본사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런 대중공사는 주지 임기를 보장해 가람 수호와 포교 불사에 전념하도록 하자는 문중의 합의로 도출된 결과다.

김하영 기자 hykim@ibulgyo.com

 

[불교신문 2600호/ 2월24일자]

용주사 주지스님 재임- 불교포커스
고려 최초 국사 혜거국사와 용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