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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주사청소년법회 봄맞이 성지순레 및 수련회 1박2일 3만원
글쓴이 용주사 등록일 2014-03-25
첨부파일 조회수 5909

일시 : 4월5일 - 6일

장소 :  수덕사,서산마애삼존불,개심사,간월암  안면도 펜션 수련회

대상 : 청소년 및 학부모

회비 : 30.000원(1일 성지 순례도 3만원임)

접수 : 용주사제2종무소 031-239-9391

         인솔자 성유스님 010-9183-8015

         자세한 사항은 용주사청소년법회 까페참고     

인원 : 선착순 45명 중 40명 선발(술 담대 하는 분들 참가 사절)

레크레이션강사 : 이은영님 초빙

출발 : 용주사 버스로 5일날 8시30분 출발 6일 용주사 12시경 도착예정

일정표 : 용주사 출발▶  수덕사 도착 참배후 점심 공양 ▶ 서산마애삼존불 관람

            ▶ 개심사 관람 ▶ 간월암 관람 ▶ 펜션 들어가서 저녁 삼겹살 파티, 켐프화이어,

            이영은 크레이션 강사님의 즐거운 친구사귀기

            아침 카레밥(예정) ▶  당진 영랑사 들려 점심공양후 ▶ 용주사 도착

 

우리가 탐방할 자료

▲  495m에 불과한 산이지만 대부분 수덕사 경내만 구경하고 가곤 하지요.

100대명산이라고 하기에는 산만 가지고는 쑥스럽지만 수덕사라는

고찰이 유명하고 각 도마다 안배정책이 작용한것이지요.

 

▲  수덕사는 백제 위덕왕(554-596)재위시 설립된 1500년이 넘은 고찰입니다.

  수덕사는 조계종 총림 중 하나인 ‘덕숭총림’이다. 총림은 선원(禪院), 강원(講院), 율원(律院)을
갖춰야 비로소 자격을 얻는다. 송광사, 해인사, 통도사, 백양사와 함께 우리나라 ‘5대 총림’이다.
경허 스님과 그 법맥을 이은 만공 스님이 이곳에서 선맥을 일으켰다.

 

▲  이응로화백으로 유명한 수덕여관,

 

▲  깔끔하게 복원되었습니다.

 

▲  성보박물관

 

일반인에게는 경허스님이나 만공스님은 잘 알지 못하고 가수 송춘희가 부른

"수덕사의 여승"과 "청춘을 불사르고"란 수필집으로 유명한 일엽스님이 생각나지요.

▲  일엽은 출가 전 일본 명문가 집안의 한 남자를 만나 아들을 낳았지만 집안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했다.
이당 김은호 화백의 제자였던 그의 아들, 화승(畵僧) 김태신이 14살에 처음으로 어머니 일엽을 찾아

갔을 때 “나를 어머니라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 불러라”라고 한 말이 유명하다.

 

▲  관음보살상과 돌에 동전을 붙이면 소원성취한다는 바위...

 

 만공스님이 머물렀다는 소림초당

 

▲  머리에 2중갓을 쓴 관세음보살 입상

 

 '백제의 미소(서산마애삼존불)  

 나무석가모니불 ()()()

잰걸음으로 달려가자니, 세 분이 한꺼번에 반겨주신다.

"잘 왔다"며, 금방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신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신다.

오체투지의 예를 갖출 공간은 마련돼 있지 않았다.

합장삼배 드리고 찬찬히, 본격적으로 마주보기를 시작했다.

 

층암절벽에 새겨진 삼존상은 현재불인 장대한 석가여래입상을 본존불로, 부처님 오른쪽에는 과거불인 제화갈라보살입상이 서 있고, 왼쪽엔 미래불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조각돼 있다.

삼존불은 자주 접할 수 있는 양식이지만, 이렇게 반가상이 함께한 삼존불은 이례적이라 전해진다.

 

본존불의 묵직하면서 당당한 체구와 둥근 맛이 감도는 윤곽선, 보살상의 세련된 조형 감각, 그리고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쾌활한 인상 등에서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곳은 백제 때 중국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므로, 이 마애여래삼존상은 당시의 활발했던 중국과의 문화교류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문화재청에서>

 

이 곳은 거대한 층암이 이 중으로 처마 역할을 해주고 있어 천년을 서 계셔도 잘 보존돼 있다고 했다.

옆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아래부분보다 윗부분이 앞으로 나와 있다.

그래서 내리치는 비를 맞지 않을 수 있는 과학적인 구조이다.

천연의 감실 속에서 부처님은 그렇게 웃고 서 계시다

 

-사진작가 이경모 씨가 촬영했다는 학계 발견 당시의 마애삼존상, 감나무님 블로그에서 옮김

 

 

 -석가모니불(현재불)

아, 미소 이야기!

우리가 도착했던 시간대가 미소를 보기엔 제일 불리한 시간이라고 한다.

불행히 삼존불엔 볕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봤다.

볼록한 볼이 더욱 볼록해지도록 입꼬리를 올려 웃는 모습을,

초승달 눈이 된 웃음, 볼우물이 움푹 패인 웃음,

재미있는 담소 중에, 말하던 본인도 웃음보가 터진 듯한 제화갈라보살의 들린 윗입술을...

 

 -제화갈라보살상(연등불, 과거불) 

제화갈라보살은  연등불이 부처님이 되기 이전, 보살시절의 이름이다.

연등불이라면 금강경에도 등장해, 우리 불자들껜 익숙한 부처님이다.

 

아득한 옛날, 석가모니께서 선혜선인 수행자이던 때에 연등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셨다.

부처님이 선혜수행자의 마을에 오시던 날, 내린 비로 땅이 젖자 선혜 수행자는 엎드려 자신의 머리카락을 풀어, 진 땅위에 펼쳐 깔아 부처님이 딛고 지나가시게 했다.

그리고 엎드린 채 서원을 한다. '나는 모든 것을 아는 지혜에 도달해 부처가 되어, 세상의 모든 생명들로 하여금 나고 죽는 윤회의 흐름을 뛰어넘게 하리라'

그 서원을 알아들으신 연등부처님은 선혜수행자에게 즉석에서 수기를 주신다.

 "오는 세상에 그대는 부처가 되리라, 그 때 이름을 석가모니라 이를 것이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미래불)

반면, 미륵보살은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할 것이라는 수기를 받았으며 현재는 도솔천에서 보살로 계시다고 한다. 석가모니부처님 입멸후 56억 7천만년 뒤에 이 곳에 내려올 미래불이시다.

이 세분은 특별히 '수기 삼존불'로 불린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어째서 현세의 서가모니를 협시한 분이 저 먼 과거의 연등불이실까, 그것도 연등불의 전신인 제화갈라보살인 채로 일까?

이쯤에선 대개의 불자라면 법성게의 한 대목을 떠올릴듯 싶다. 나 또한 그러했다.

 

'九世十世互相卽 仍不雜亂隔別成 구세십세호상즉 잉불잡란격별성,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시간이 서로 어울리되 어지러이 섞이지않고 따로따로 뚜렷하네.'

 

경전을 읽다보면 시간이란 것이 앞뒤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란 느낌을 강하게 받는데, 특히나 화엄경 속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한 덩이임을 어렴풋 짐작케 된다.

 

구세는 과거의 과거, 과거의 현재, 과거의 미래, 현재의 과거, 현재의 현재, 현재의 미래, 미래의 과거, 미래의 현재, 미래의 미래를 말하고, 거기에 현재의 한 생각 一念을 더해 십세가 된다.

어느 부분을 잘라내 과거라 하고, 미래라 이름 할 수 있을까.

 

 

 

시간에 대한 이해가 이러하다면, 석가모니께서 도솔천을 떠나지 않았는데 이미 왕궁에 태어났으며, 아직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사람들을 이미 다 제도했다는 경전의 말씀에도 더는 어리둥절하지 않을듯 싶다.

법성게가 시종 노래하듯 하나 속에 모두 있고, 모두가 곧 하나인 세상을 삼세불을 통해 드러내 보인 자리가 이 곳이다.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나무석가모니불 ()()()

 

 

개심사로 가는 길에 저수지가 하나 있는데 개심사로 가는 길이 더욱 운치가 있네요

 

 

개심사 입구를 들어서면

우선 울창한 나무들이 가는 길에 시원하게 해 주네요. 입구에 도착하니

개심사 일주문이 1000년 세월을 굽어 보고 있습니다.

개심사로 올라가는 길 옆으로 울창한 수목들이 세월의 역사를 보여주며

지나가는 바람에 세월의 흔적을 전해 줍니다.

개심사( 마음을 여는 절)와 세심동 (마음을 씻어내는 곳)이 마음을 씻어 내려 놓으라 합니다.

한걸음 한 걸음 돌계단을 올라 가면서 속세에 모든 번민을 내려 놓으라 하네요

개심사 뜰 앞에는 연못이 저를 반기네요

 연못이 한여름의 더위를 한 순간에 달아 나게 하고

개심사로 오르니 천년 고찰의 풍경이 절로 느껴 지네요

법종각의 종소리는 사바세계의 무지를 깨워주고

안양루에 있는 게송이  자연의생명력을 극찬하고

무량수각에는 지장보살이 굽어보며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있으시고 

요사채(승려들이 생활하는 관)인 심검당에는 오늘을 이어가고

명부전과 산신각에는 중생들의 극락왕생를 빌어 주고 있으니

저는 제 자신의 소원만 들어달라 기원했으니 헐 ~~~~

 

 

 

 

개심사로 올라가는 길목이  발걸음을 쉬엄쉬엄가게 하네요

 

 

 

 

 

 

세심동이란 마음을 씻어 내는 곳이라네요

씻어 낼 마음을 알 지 못하니 ㅎㅎㅎ

 

개심사라 마음을 여는 절이라

마음도 열었다 닫었다 할 수 있으면 ~~

 

 

 

 

간월암 과거에는 피안도, 피안사로 물 위에 떠 있는 연꽃과 비슷하다 해서 연화대로 불렸다

썰물 때는 길이 열리고 밀물 때는 섬이 되는

간월도의 간월암과 무학대사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보자.

서산시 인지면 무월리에서 태어난 무학대사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의 일이다.

아버지가 나라에서 진 빚을 갚지 못해 쫓겨 다니고 있었다.

포졸들이 대신 어머니를 붙잡아서 고개를 넘어가는데

갑자기 산기가 있었다.

그때 온 산천이 눈으로 덮여 있었는데

둘러보니 한 곳만 눈이 없어

그곳에서 해산을 하고 아기를 옷가지로 덮어놓은 뒤 태안현청으로 끌려갔다.

그 사실을 전해들은 현감이 어머니를 풀어주어 다시 그곳으로 가보니

큰 학이 두 날개를 펴고서 아기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크게 감격한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무학(舞鶴) 이라고 지었으며,

그 고개를 학이 돌본 고개 라하여 학돌재 라고 하게 되었다.

그 후 출가를 한 무학이 이곳 간월도에 암자를 짓고 수행을  하던 중

어느 날 문득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이 암자 이름을 간월암이라고 지었다.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간월암이 폐사되었던 것을

1941년 만공선사와 안면 면장 박동래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만공선사는 이곳에서

조국해방을 위한 천일기도를 드리고 바로 구 후에 광복을 맞이했다고 전한답니다.

 

 

 

 

 

우리가 켐프화이어, 레크레이션 할 펜션

 

 

제3회 정조대왕 효행백일장 수상작 안내
제 3 회 정조대왕 효행 백일장 참가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