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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조 왕릉터 택지개발 갈등-ㅡ 한겨레신문
글쓴이 용주사 등록일 2009-04-08
첨부파일 조회수 1903
 

정조 왕릉터’ 택지개발 갈등

주공 “일부 남기고 모두 개발”

역사학계 “유적지 파괴 말라”

 

옛 왕조의 임금이 세상을 떠난 뒤 처음 묻은 곳을 일컫는 ‘초장지(初葬地)’는 그 뒤 이장한 실제 왕릉만큼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을까. 조선 정조 임금(재위 1776~1800)이 사후 처음 묻혔던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초장지 유적 4만여평의 택지 개발 여부를 놓고 역사학계, 시민단체들과 대한주택공사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공사 쪽이 지난 2월말 재실터, 정자각터 등의 일부 유적(6000여평)만 제외한 초장지 경역 대부분을 고층아파트 등의 택지 개발 구역으로 확정하자,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저지 운동에 나섰다.

한국사연구회 등 7개 역사 연구단체가 꾸린 ‘정조대왕 왕릉터 보존대책위원회’와 문화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7일 기자 회견을 열어 초장지에 대한 주택공사의 택지 개발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조선 왕릉 가운데 재실터 등의 초장 왕릉터 실체가 유일하게 확인된 유적을 파괴하는 것은 정부가 올 6월 조선 왕릉의 세계 문화유산 등록을 추진중인 현재 상황과도 맞지 않다”며 초장지 경역 전체의 사적 확대 지정, 역사 공원 조성 등을 주장했다.  


정조 초장지는 정조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건릉, 융릉(융건릉:사적 206호)의 바로 남쪽 부근 구릉에 있으며 1821년 이장 전까지는 정조의 왕릉이었다. 현재 초장지의 가장 윗부분인 원래 무덤 자리만 융건릉 사적에 포함되어 있고, 경내 대부분은 사적 구역 바깥에 있다. 공사 쪽은 이를 근거로 1998년부터 초장지를 포함한 융건릉 부근 36만여평을 택지개발 지구로 정했으나, 2007년 초장지 시굴 조사에서 재실 터, 정자각 터가 드러나자 학자들과 시민단체 등에서 보존을 주장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국토해양부, 문화재청, 경기도 등은 이와관련해 지난해부터 계속 관계 부처간 회의를 열어 대안을 협의한 끝에 지난 2월 유적 일부만 남기고 초장지 대부분을 택지로 개발한다는 안을 확정한 상태다.


대책위 실무자인 이남규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는 “초장지는 중국, 일본에 없는 조선 고유의 왕릉 문화가 만들어낸 산물로 역사 문화적 가치가 지대하며, 유적의 경관이나 정체성을 감안할 때 전체 경역 보존이 바람직하다”며 “전면 보존을 위한 서명 운동, 사적 재신청, 기관 협의 과정에 대한 감사 청구 등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주택공사쪽은 이에 대해 “관련 기관과 적법한 협의를 거쳐 추진한 만큼 택지개발 사업을 포기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문화재청의 엄승용 사적명승국장도 “2월에 확정된 최종안은 재실터, 정자각터 같은 초장지 안의 핵심 유적은 살려 보존하자는 우리쪽 제안을 나름대로 반영한 것”이라며 “현실적인 맥락에서 개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중재안을 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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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왕릉 터 유적파괴… 택지개발 중단하라-조선일보